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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도서출판 해방   taeha4287@hanmail.net
2019/06/30  
1. 책 소개

오늘날 ‘페미니즘’ 이름표를 달고 나온 책은 수백 종에 이른다. 하지만 많은 여성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구체적인 질문과 고민에 답을 주는 책은 거의 없다. 현실에서 여성해방운동은 고양되고 있지만, 그 운동 수준을 뒷받침할 만한 사상적, 이론적 바탕이 마련되지 않는 까닭이다. 최근에 출간된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도서출판 해방, 정가 15,000원)는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 답하는 책이다. 이 책은 탄탄한 이론적 근거 위에 페미니즘 담론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여성해방의 길을 모색한다. 그 길은 ‘페미니즘’도 아니고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아닌, ‘사회주의’ 그 자체에 있다. 이 책은 최근 고양되고 있는 여성해방운동의 요구에 부응할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소개하는 최초의 개설서라 할 수 있다.


2. 출판사 서평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는 ‘페미니즘’ 담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히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시대라 할 만하다. 페미니즘 바람은 출판가에도 뜨겁게 불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페미니즘’ 이름표를 달고 나온 책이 수백 종에 이른다. 그중에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개념을 ‘다양하게’ 설명하는 전도서나 입문서 성격의 책이 주종을 이룬다. 여기에는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그 페미니즘은 틀렸고, 이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다”고 항변하는, 페미니즘 내부의 논쟁을 다룬 책들이다. 그 다음으로는 페미니즘 자체에 반발하며 여성억압 철폐운동을 부정하는, 이른바 ‘백래시(backlash)’ 성격의 반(反)페미니즘 책들도 눈에 띈다.

최근에 출간된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도서출판 해방, 정가 15,000원)도 표지에는 페미니즘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페미니즘을 전도하는 책도 아니고, ‘진정한 페미니즘’을 가리기 위한 페미니즘 내부의 논쟁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억지 논리를 꿰어 맞춘 반(反)페미니즘 책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지만, 냉철한 논리로 페미니즘 담론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여성억압의 본질과 궁극의 여성해방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여성해방론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시대에 이러한 프레임은 일반 독자들에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책 제목만 보고서 “페미니즘이 여성해방 아냐?” 하는 질문이 갑자기 툭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그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 책은 페미니즘이 여성해방과 동의어처럼 쓰이는 현실을 냉철하게 지적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말하자면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운동 자체가 아니라 그 운동을 구성해온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따라서 다른 한쪽에서는 페미니즘과 별개로, 그리고 페미니즘의 자유주의적 한계와 오류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여성해방운동의 흐름이 이어져 왔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서는 페미니즘의 어떤 점을 비판하고 있을까. 먼저 페미니즘의 탈(脫)역사적 한계를 지적한다. 요컨대 인류사의 모든 사회적 억압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그 원인이 규명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억압을 철폐하는 길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기존 페미니즘 이론은 여성억압의 기원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여러 개의 페미니즘이 난립하며 이론적 오류와 실천적 한계를 되풀이해 온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반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서는 인류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여성억압의 기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억압’이 발생함과 동시에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도 발생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계급사회가 지속되는 한 여성 억압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억압구조는 그대로 둔 채 ‘남성으로부터의 여성 해방’만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은 온전한 여성해방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 2부에서는 페미니즘의 중심 개념인 ‘가부장제’ 이론과 ‘상호교차성’, ‘사회재생산’ 등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페미니즘에 따르면 가부장제가 여성 억압의 근원이다. 인류의 역사는 가부장제가 지배해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태초에 가부장제가 있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의 이러한 가부장제 모델은 인류학적 사실에 배치된다. 또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남성’이 아니라 ‘자본가’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게 상식이다. 물론 페미니즘 안에서도 가부장제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가족임금’, ‘상호교차성’, ‘사회재생산’ 등의 개념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들 또한 여성억압과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에 갇혀 있다. 한편 이 책의 3부에는 아직까지도 페미니즘의 교과서처럼 읽히고 있는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등 몇몇 스테디셀러 도서에 대한 비판적 서평이 실려 있다.

이 책은 공신력 있는 이론적 근거 위에서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그간 여성해방을 지지하면서도 현실의 페미니즘에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껴온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불편함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독자들은 여성억압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현실의 여성해방운동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 표면화되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며 거리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SNS에서 반동적 ‘백래시’에 맞서 싸우는 청년 여성들에게도 이론적 무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밝힌 것처럼 오늘날 ‘페미니즘’ 이름표를 달고 나온 책은 수백 종에 이른다. 하지만 페미니즘 바깥에서 여성해방운동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책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오늘날 많은 여성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구체적인 질문과 고민에 답을 주는 책은 전무하다. 현실에서 여성해방운동은 고양되고 있지만, 그 운동 수준을 뒷받침할 만한 사상적, 이론적 바탕이 마련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 답은 ‘페미니즘’도 아니고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아닌,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 있다. 그리고 지금 현실을 반영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 개설서로는 이 책이 유일하다.


3. 차례

머리말

1부 사회주의, 여성의 억압과 해방을 말하다

여성해방으로 향하는 길: 사회주의
여성해방운동이 반자본주의를 말해야 하는 이유
인류학 성과로 본 여성억압의 기원
3.8 여성의 날과 사회주의

2부 페미니즘 개념을 비판하다

가부장제 개념,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가족임금, 남성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는 정말 공모했는가?
정체성 정치, 왜 비판받는가
상호교차성, 여러 억압의 기계적 결합에 머무르다
사회재생산 이론, 이원론의 답습

3부 페미니즘 책을 비판하다

『페미니즘의 도전』, 그 도전이 멈추는 지점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여성혐오’, 새로운 이름을 위하여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틀렸다
『캘리번과 마녀』, 자본주의 이행과 여성 종속의 설명에 실패하다


4. 밑줄 긋기

이처럼 여성해방운동의 역사 안에는 여러 개의 페미니즘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페미니즘‘들’은 대체로 인간의 물질적 생산과 분리된 여성억압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실천에 있어서도 여성억압을 철폐하는 운동이 다른 억압을 철폐하는 운동과는 독자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역사적으로 살펴본 페미니즘은 그냥 ‘여성억압을 철폐하고자 하는 사상’이 아니라, 여성의 억압을 다른 모든 억압에 앞선 사회의 기본 모순으로 바라보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9쪽)

이제까지 상당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해방과 페미니즘을 동일시해왔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을 따르지 않고 여성해방에 헌신하는 방법은 없으며 ‘맑스주의 페미니즘’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가능할지언정 사회주의 입장에 선 독자적 여성해방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는 식의 입장을 보여 왔다. 심지어 사회주의자들 역시 사회주의 입장의 여성해방운동을 확립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맑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틀 안에 머무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21쪽)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페미니즘 사상이 주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여성해방운동 내에서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려는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전희경과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아예 “누가, 왜 ‘근본 원인’을 알고자 하는가”라며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에 대한 질문을 불순하게 보기까지 한다. 이런 식으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에 대한 논의 자체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페미니즘 사상으로는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24쪽)

따라서 인류역사의 최초 단계에서의 성별 분업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든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지배를 반영하는 것이다”고 말한 것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31쪽)

생산의 발전은 여성억압을 출현시킴과 동시에 잉여생산물과 사유재산을 출현시켰고 이는 계급과 국가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주된 식량생산자가 남성이기에 잉여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것 역시 남성이었다. 이에 따라 지배계급은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가구 단위의 생산과 소비를 지휘하여 잉여생산물을 지배자들에게 바칠 책임을 부여했다. 이는 가구 내에서 연장자 남성(가부장)이 가족 구성원들의 생산과 소비를 통제하는, 인류학적 의미의 가부장제 구조를 강화하였다.(33~34쪽)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자신의 지배를 확립, 유지하기 위해 여성억압을 적극 활용했다. 자본주의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이윤추구라는 자신의 목적에 맞게 그 전부터 존재하던 여성억압을 이용하고 강화했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만 의 고유한 여성억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자본주의는 여성억압에 기반한 체제라 할 수 있다.(35쪽)

자본주의는 자본가계급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그전부터 존재하던 여성억압을 이용, 강화했다. 자본가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핑계로 ‘여성의 본령은 가정’이라는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던 여성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활용하는 사례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만의 고유한 여성억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즉 여성들이 ‘가정주부’이자 ‘노동자’로서 이중으로 억압받고, 이중의 부담 속에 놓인 여성 노동자들이 사회적 생산에서도 남성에 비해 차별을 받게 된다.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이 자본주의의 생산방식과 충돌하고, 이것이 여성의 노동을 낮은 위치에 놓는다.(40쪽)

페미니즘의 틀 속에서 반자본주의를 외치기 위해서는 계급문제와 여성문제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페미니즘을 유일한 여성해방의 길이라고 배워 온 우리에게 반자본주의적 여성해방운동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52쪽)

여성억압의 다양한 양상들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여성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래야 여성이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대상을 분명히 할 수 있다.(61쪽)

생산의 발전이라는 공통의 원인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여성억압과 계급억압은 상호작용하며 서로가 서로를 강화했다. 일각에서는 ‘계급억압이 여성억압의 근원이다’라는 것이 맑스주의의 입장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펼친 주장도 계급억압이 여성억압의 원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두 억압의 발생이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었다.(73쪽)

우리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면,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관계는 얼마든지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여성억압의 기원을 질문하지 않고 여성억압에 대해 초역사적으로 접근한다면 이 지점을 놓치게 될 것이다.(74쪽)

다른 여성들도 노력만 하면 자기처럼 유리 천장을 깨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는 여성 자본가는 아무리 자기가 평등을 갈망한다고 주장할지라도, 이미 ‘평등’ 이라는 가치의 반대편에서 착취당하는 다른 여성들을 밟고 서 있는 것 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그렇게 짓밟히던 여성들이 진짜 평등과 해방을 위해 일어서는 날이었다.(89쪽)

예컨대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로 잘 알려진 정희진은 2017년 10월 11일 『한겨레 21』에서 주최한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강연에서 “현재 사회의 전제는 자본주의다. …… 자본주의의 전제는 가부장제다. 가부장제 없이는 자본주의가 작동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였다.(96~97쪽)

하지만 ‘가부장제’가 애초 여성억압적 구조 일반을 이렇게 폭넓게 지칭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그것도 지금과 는 매우 다른 시기의 특정한 가족구조를 지칭하는 인류학적 개념이었다.(97쪽)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개념을 통해 여성억압의 보편성과 독자성을 주장하려 했지만, 이러한 초역사적 접근은 실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고, 여성억압의 기원과 물적 토대를 옳게 규명할 수도 없었다.(101쪽)

‘가부장제 이론이 여성억압의 원인을 적절히 답해줄 수 없다면 왜 굳이 가부장제 개념을 써야 하나’라고. 여기에 답할 수 없다면, 가부장제라는 틀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이 질문을 두고 토론할 때이다.(103쪽)

하지만 같은 계급사회라 할지라도, 직접생산자가 스스로의 생산 과정을 통제할 수 있었던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임신, 월경시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생산 참여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일반화된 이후 직접생산자가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여성들도 이러한 가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과정을 기계의 리듬에 맞춰 통제하는 자본가가,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회복 중인 여성 노동자의 조건에 맞춰 생산 속도를 조절해줄 리가 없었고, 출산휴가나 탁아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 굳이 추가적 비용의 지출을 자처할 이유도 없었다.(113~114쪽)

정체성정치는 백인, 유색인, 여성, 성소수자 모두가 정체성을 막론하고 겪는 계급적 억압을 설명할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상의 영역에서 경험한 차별, 주관적 경험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이다.(126쪽)

예를 들어 어떤 경찰관이 흑인에게 총을 쐈을 때 그 경찰관이 “흑인이니까 총을 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우리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가난한 사람이니까 총을 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고, 중요한 것은 등 뒤에 박힌 총알이며 그 흑인을 그 자리에 서게 한 역사적, 사회구조적 맥락이라는 것이다.(128쪽)

결국 여러 억압이 골고루 중요하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기계적으로 결합시키는 상호교차성의 접근은 오히려 그 어떤 억압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부적절한 실천으로 이어졌다.(142쪽)

사회재생산 이론은 여성억압을 대개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데, 이는 노동자계급 이외의 다른 계급에서 일어나는 여성억압은 설명 할 수 없다. 게다가 여성억압은 자본주의 이전부터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것인데, 사회재생산 이론은 여성억압을 자본주의와의 관계, 그것도 노동력 재생산과의 관계 속에서만 설명함으로써 여성억압의 오랜 역사적 성격을 간과하게 된다.(153~154쪽)

피억압 민중이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깨고 이 세상을 뒤집을 가능성을 『페미니즘의 도전』은 부정한다. 그래서 “문제 의 원인을 규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과관계의 환원론에 빠지기 쉽다”고 하며,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우리가 당하는 억압의 근 본적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한다.(167쪽)

‘도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지배자들의 상식에 불과한 사회의 ‘상식’에 제대로 도전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사회 전체 목소리로 만들 수 있는 지배자들의 권력 그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의 도전』이 하지 않는 질문, ‘지배자들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우리가 그들에 의해 억압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168쪽)

여성억압 전체를 지칭하기 위해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쓸 경우 개별 남성들에 대한 비판 과 처벌만 강조되거나, 더 나아가 남성 집단 전체가 여성을 억압할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남성들과는 연대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조장 될 우려도 있다.(181쪽)

미즈가 2014년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한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삶 을 시작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바로 이런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어야 한다. 이러한 전망을 명확히 한다면, 자본주의에 ‘가부장제’를 덧씌우거나 자본주의와 동등한 위상의 ‘가부장제’ 개념 을 설정하는 주장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199쪽)

페데리치가 『캘리번과 마녀』에서 주장한 바가 대부분 실제 역사에 부합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등장과 투쟁의 역사, 자본주의 형성사 전반이 근본적으로 새로 쓰여야 할 것이다.(214쪽)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여성의 종속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하려는 페데리치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더 황당한 일은 자본주의의 시초축적을 새로운 관점에서 설명하고 여성의 종속과 결부시켜 설명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책 전반에 걸쳐 페데리치가 자본주의는 어떤 체제라고 규정하는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214쪽)


5. 저자 소개

김민재
20대 후반 여성이다. 대학 내에서 페미니즘 학회를 만들고 운영했다.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을 지향했으나, 여러 고민과 학습을 거친 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정립을 결심했다. 『사회주의자』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지완
20대 중반의 여성이다. 2018년부터 『사회주의자』 기자로 활동했고, 주로 여성해방, 장애해방 관련 기사를 작성했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황정규
노동해방실천연대 회원으로 『사회주의자』 편집국장을 맡아 사회주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2012), 『마르크스의 생태학』(2016), 『제국주의』(2017)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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